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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기타 북리뷰

'언어의 온도'후기(2)/참사랑을 하는 법/상대방을 잘 헤아리는 팁/사소한 것이 그 누군가에겐 길이 된다.

by 100점짜리 인생 2022.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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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1) 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행

어디선가 깊은 미궁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길을 잃었다. 전두엽이 잘려나간 사람처럼 흐리멍덩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후배의 넋두리를 듣다 보니 오래전 나를 스쳐 지나간 추억과 상념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서 조용히 읊조렸다.

사랑에 이끌리면 황량한 사막에서 야자수라도 발견한 것처럼 앞뒤 가라지 않고 다가선다. 그 나무를, 상대방을 알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뛰어간다.


그러나 둘만의 극적인 여행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서늘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내 발걸음은 '네'가 아닌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역시 씁쓸한 사랑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P. 60) 우주만 한 사연

우리나라 지하철의 경우 거의 모든 스크린도어에 점자 표기가 되어 있다.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올록볼록한 점자 표면을 살며시 더듬어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난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이 작은 점이
내겐 말 그대로 점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선 또는 길이 될 테지.

우린, 각자 처지에 따라 다른 게 많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지도 몰라.
이 세상 모든 풍경이, 풀 한 포기가, 햇살 한 줌이 남편에겐 경이로움 그 자체일 겁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몸뚱아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우주만 한 크기의 사연 하나쯤은 가슴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한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만, 그러한 사정과 까닭을
너그럽게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인 듯 하다. 우리 마음속에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가슴에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일까.
가끔은 아쉽기도 하다.


(P. 66) 헤아림 위에 피는 꽃.

동사 '알다'가 명사 알(卵)에서 파생했다고 한다. '아는 행위'는 사물과 현상의 외피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진득하게 헤아리는 걸 의미한다.

제한된 정보로는 그 사람의 진면목은
물론 바닥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상대의 웃음 뒤
감춰진 상처를 감지할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싫어하는 것까지 헤아릴 때
'그 사람을 좀 잘 안다'고
겨우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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