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언어의 온도
<저자> : 이기주 작가 / 교보문고 북멘토, 서울경제신문 기자
<목차>
01. 말, 마음에 새기는 것.
02. 글, 지지 않는 꽃
03. 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
![](https://blog.kakaocdn.net/dn/pzXtf/btrEu6z5Bqs/52L2dTuKPrKFVte5ufiheK/img.jpg)
<서문>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습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릅니다.
온기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줍니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고, 어떤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러나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 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P. 17) 더 아픈 사람
2호선 지하철 안, 맞은 편 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꼬마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는 약봉지가 들여 있었고,
할머니가 손자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직 열이 있네. 저녁 먹고 약 먹자"
손자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대꾸했다.
"네,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할머니는 손자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의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P. 50) 진짜 사과는 아프다.
사과가 뭘까. 도대체 그게 뭐기에 나이가 들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우린 왜 "미안해"라는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을 승자가 아닌 패자로
간주하는 걸까.
사과를 뜻하는 단어 'apology'는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그리스어 'apologia'에서 유래했다.
얽힌 일을 처리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지난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승리의 언어가 사과인 셈이다.
언젠가 정중히 사과를 건네는 사람의 표정을
들여다 본 적 있다.
그는 어딘지 힘겨워 보였다. 왜일까?
영어 단어 sorry의 어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래서일까.
진심 어린 사과에는
'널 아프게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스며 있는 듯 하다.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