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중략)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년 발표된 이상화의 시 일부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내적 고통을 담고 있다. 푸른 설움 속 다리를 절며 걷는 모습에서 나라를 빼앗긴 그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길 것 같은 그의 마음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디 나라뿐이랴.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사는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심리학에 ‘내면아이’ 또는 ‘어른 아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이나 상처를 겪은 아이가 그때의 상처로 인해 어른이 되어도 마음은 아직 그때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고통의 포로가 된다. 동일한 상황이 되면 감정은 폭발하고 휘둘린다. 마음은 온통 그 감정에 지배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의 봄은 요원하다.
흔히 마음을 '창'에 비유한다.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처와 고통은 잘못된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미움이나 분노 혹은 슬픔, 외로움, 두려움의 창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뚤어지고 왜곡된 관점을 갖기 십상이다. 다른 사람들은 기쁜데 나만 슬픈 것 같고 미래까지도 암울해 보인다. 슬픔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 대해 「화해」의 저자 오은영은 상처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고 나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주관적 감정을 넘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럴 때 속절없이 주어진 삶이 아니라 창조적인 ‘나’ 만의 인생을 새로운 창으로 볼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마음에 봄이 온다.
주민 다수가 범죄자, 알코올 중독자 혹은 정신질환자였던 1950~70년대 하와이 카우아이섬. 미국 소아과·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등은 1955년 이 섬에서 출생한 833명이 18세가 될 때까지 추적하는 카우아이섬 종단 연구에 착수했다.
이 연구 분석을 주도한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833명 중에서도 특히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추려냈다. 이들은 모두 극빈층 가정, 가정불화, 부모의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 등의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사회적 부적응자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3분의 1인 72명은
힘든 환경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밝게 성장했다. 이유는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 주고 응원해 준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한 사람의 이해와 응원이 세상을 바라보는 밝은 창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시력을 잃은 한국인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 강영우.
그에게 시련은 설상가상으로 밀려왔다.
그의 실명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8시간 만에 돌아가신 어머니, 장애인 동생을 돌보다 2년 만에 과로사한 누나. 남은 동생들과의 생이별에 고아 신세까지.
맹인으로 보는 세상의 창은 어두움뿐이었고, 그 고통으로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
이때 그는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를 만났고, 그녀를 통해 희망의 창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3년 8개월 만에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었다.
나아가 미국의 대학교수, 부시 대통령 시절엔 장애인위원회 정책 차관보로 7년 넘게 활동하기까지 했다.
그의 저서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저에게 장애는 축복 그 자체였습니다. 장애는 불편함일 수는 있어도 불완전함은 아닙니다” 그의 마음엔 어두움이 전혀 없었다. 그는 생각, 마음, 영적인 장애를 뛰어넘어 꿈을 바라본 것이다. 그럴 때 그의 삶은 고통이 아니라 축복으로 가득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상처와 고통에 마음을 빼앗긴 이의 마음 같다. 봄조차 빼앗길 것 같아 푸른 설움에 울었던 시인처럼.
그 가운데서 내 마음에 자리 잡은 희망과 꿈의 창으로 세상을 보자.
그래서 어른 아이가 건강한 어른이 되어 그 마음에도 햇살 가득한 봄이 오기를 소망한다. 2022년 봄의 한 가운데서 강영우 박사의 희망이 우리의 희망이길 꿈꾼다.
'BOOK REVIEW > 화두가 있는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읽기. 글쓰기. 말하기. / 화두독서법으로 소개하기 (0) | 2022.04.01 |
---|---|
'말그릇(저자 김윤나)' 전체 후기 화두독서법/ '말'이란 무엇인가/ 말은 그릇이다 (0) | 2022.03.31 |
'상위 0.1% 부자가 말하는 진짜 부자 되는 비밀'/'웰씽킹'(켈리최)/진짜 부자, 참부자 / 돈, 인격, 공헌과 나눔/ 추신수, 한국유리 최태섭 회장 (0) | 2022.03.13 |
'이제부터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콘텐츠 머니타이제이션'/나로 살아가는 삶 / 넬슨만델라 / 개별성 / MZ세대 레이블링 (0) | 2022.03.01 |
‘무엇을 볼 것인가’/'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 (한지우 저자)/칼럼 수정/ 인간의 본질 / 인간이란 무엇인가 / 인간다운 삶 (2) | 2022.02.03 |
댓글